
Q. 지리산 천왕봉 바위글씨 392자, 대체 무슨 내용이 담겼을까?
A. 1924년 구한말 문인 무희가 짓고 권률이 새긴 글로, 나라 잃은 울분과 광복에 대한 갈망을 담고 있습니다. "오랑캐를 크게 통일하여 문명이 밝게 빛나는 날을 다시 볼 수 있을 것"이라며 일제에 대한 저항 의지를 드러낸 내용입니다. 국립공원 내 확인된 근대 이전 석각 194개 중 글자 수 최다, 해발고도 최고(1,900m대)에 위치한 석각입니다.
이 바위글씨는 어떻게 발견됐을까?
이 석각은 일제강점기 지리산에서 의병을 조직해 활동한 권상순 의병장의 후손이 2021년 9월 처음 발견했습니다. 이후 2023년 11월 국립공원공단에 정식 조사를 의뢰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됐습니다. 폭 4.2m, 높이 1.9m 크기의 바위에 새겨진 글씨는 오랜 세월 마모돼 전문을 온전히 읽기 어려웠는데, 국립공원공단 연구진이 3차원 스캔과 탁본 작업을 거쳐 판독에 성공했습니다.

글에는 정확히 어떤 마음이 담겼을까?
이 글을 국역한 최석기 한국선비문화연구원 부원장에 따르면, 천왕을 상징하는 지리산 천왕봉의 위엄을 빌려 오랑캐(일제)를 물리치고 밝은 세상이 오기를 갈망하는 내용이 핵심입니다. 글의 마지막은 "스스로 울분과 원통함을 금치 못하고서 피를 토하고 울음을 삼키며 이 남악(지리산) 천왕봉에 올라 기록한다. 아! 슬프다"라는 문장으로 맺습니다. 나라 잃은 지식인이 가장 높은 산 정상에서 토해낸 절규였던 셈입니다.
다른 산에도 이런 흔적이 남아있을까?
있습니다. 북한산 백운대 바위에는 1919년 3월 1일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서를 직접 낭독한 정재용 선생이 새긴 글이 남아 있습니다. 독립선언서를 작성한 최남선과 자신이 낭독했다는 사실을 훗날 와전되지 않도록 정확히 기록해 둔 내용입니다. 의정부 호원동 석굴암에는 백범 김구 선생의 흔적도 있습니다. 김구 선생이 상하이 망명 전 몸을 숨겼던 은신처로, 해방 후 1948년 다시 찾아 남긴 친필 글씨를 이듬해 바위에 새겼습니다. 원래 1949년 6월 26일 제막식이 예정돼 있었지만, 공교롭게도 바로 그날 선생이 서거하면서 이 글씨는 백범의 마지막 유묵으로 남게 됐습니다.
이 유적들은 앞으로 어떻게 보존될까?
자연 속에 그대로 노출된 문화자원은 시간이 지날수록 훼손 위험이 큽니다. 이에 국립공원공단은 2024년 지리산 천왕봉 바위글씨를 3차원 디지털로 기록한 데 이어, 올해는 북한산 백운대 암각문도 디지털 자료로 전환해 원형 보존에 나섰습니다.
🗂️ 이슈탐험가가 다룬 이야기
→ 친일재산, 이미 팔았어도 12월부터 환수된다는데 — 뭐가 달라질까
→ 하영 친일 논란, 4대째 의사 집안이라더니 왜 이렇게 커졌을까
독립운동 유적 관련 후속 소식은 나오는 대로 이어서 정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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